15화 · 먼저 떠난 사람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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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섭은 약속보다 일찍 왔다.
손에는 갈색 종이봉투가 있었다. 치우에게 돌려줄 물건이라고 했다. 안에는 열쇠와 수첩, 빌려 쓰던 작은 계산기가 들어 있었다. 계산기 액정 한쪽이 깨져 있었다.
“이건 제가 새로 사서 드리겠습니다.”
기섭이 말했다.
치우는 계산기를 보지 않았다.
“앉으십시오.”
창고 안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상필과 경수, 다른 일로 온 사내 둘. 태석은 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기섭은 그들을 보고 잠깐 멈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치우는 일부러 사람들을 남겨 두었다.
“여기서요?”
기섭이 물었다.
“숨길 말 있습니까.”
치우가 말했다.
기섭의 얼굴이 굳었다. 그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해도 불리한 부분이 있었다. 싫다고 하면 숨기는 사람이 되고, 괜찮다고 하면 남들 앞에 자기 사정을 펼쳐야 했다.
치우는 그것을 알고 물었다.
기섭은 의자에 앉았다.
봉투를 탁자에 놓았다.
그것이 그날 그가 스스로 한 마지막 편한 동작이었다.
치우는 기환 일행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다.
기섭은 받을 돈이 있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는 대충 이야기했다고 했다. 치우는 대충이라는 말을 붙잡았다.
“어디까지가 대충입니까.”
기섭이 경수를 보았다.
경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들 아는 정도입니다.”
“다들 안다고요.”
치우가 되물었다.
상필이 짧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기섭의 표정이 변했다. 자신이 이미 정해진 이야기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는 겁니까.”
치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확인된 잘못은 없었다. 기섭은 떠나겠다고 했고, 사람들이 함께 왔고, 상필이 의심을 던졌다. 그 사이를 메운 것은 치우의 분노였다.
그러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결과는 정해졌다.
“여기 일 하면서 여기 사람들 얘기를 밖에 하는 게 괜찮습니까.”
기섭은 입을 다물었다.
치우는 침묵을 인정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알았다.
상필이 먼저 일어났다.
기섭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사내는 몸을 굳혔다. 치우는 말리지 않았다. 그 침묵이 허락이라는 것을 방 안의 모두가 알았다.
경수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말로 해라.”
상필은 치우를 봤다.
치우는 경수를 보았다.
“형님은 지금까지 말로 하셨습니까.”
경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 질문은 지난날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막을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치우는 상대의 죄를 찾아내는 순간 그 사람의 입을 닫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경수는 한 발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도 그래야 되나.”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기섭이 상필의 손을 떼어 냈다. 세게 밀친 것도 아니었다. 자기 팔에서 남의 손을 내려놓은 정도였다.
상필은 그 동작을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짧은 소리가 났다.
기섭이 탁자에 부딪혔고 계산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깨진 액정 위로 다시 금이 갔다. 태석이 문에서 떨어져 들어왔다.
치우가 손을 들었다.
방이 멈췄다.
기섭은 탁자를 짚고 서 있었다. 숨을 고르고 있었다. 코트 깃이 비뚤어졌고 입술 안쪽에 피가 묻었다.
치우는 순간 만족했다.
자기가 손을 들자 모두 멈췄다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기섭이 다쳤다는 사실보다 먼저.
“사과하십시오.”
치우가 말했다.
기섭이 그를 보았다.
“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경수는 기섭 옆에 섰다. 더 손대지 못하게 서 있는 모양이었다. 상필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러섰다.
치우는 자기가 이 일을 끝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잘못 시작했다는 사실이 덜 보일 것 같았다.
“밖에서 여기 얘기한 거요.”
기섭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잠깐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러고는 치우에게 물었다.
“그거 안 했다고 하면 믿습니까.”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뭘 말했다는 건데요.”
그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기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나간다는 게 싫은 거네.”
누군가 작게 숨을 쉬었다.
치우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권력은 사람들의 눈을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모든 눈 앞에서 도망칠 곳이 없는 일이었다.
기섭은 똑바로 섰다.
“미안합니다.”
그가 말했다.
치우는 그 말을 듣고도 이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일한 거.”
기섭이 덧붙였다.
상필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이번에는 경수가 앞을 막았다.
치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그제야 상필이 물러섰다.
기섭은 바닥에 떨어진 계산기를 주웠다.
액정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봉투 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자기 것이 아니므로 놓고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치우가 말했다.
“가져가십시오.”
기섭은 계산기를 탁자에 놓았다.
“내 것 아닙니다.”
그는 빈손으로 문을 향해 걸었다.
태석이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치우가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태석은 돌아보지 않았다.
기섭이 문턱에서 멈췄다.
“기환 아저씨 돈은 줍니까.”
치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이 기섭에게는 충분한 답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나갔다. 태석이 뒤따랐다.
문이 닫힌 뒤 상필이 말했다.
“저렇게 보내도 됩니까.”
치우는 그를 봤다.
“보냈으면 보낸 겁니다.”
상필은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치우가 자기와 같은 쪽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처럼. 문수와 다른 사람이 올까 봐 걱정했는데 결국 비슷한 사람이 왔다는 안도였다.
치우는 그 표정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를 이롭게 했는지 알았다.
상필은 한 대를 때렸고 치우는 자신의 이름을 내주었다.
경수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치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어 버린 창고 바닥에 계산기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이 있었다. 경수가 그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오늘 일은 니가 했다.”
경수가 말했다.
치우는 탁자를 보았다.
“제가 때리진 않았습니다.”
말이 나오자 경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실망보다 피로가 많았다.
“그 소리 할 줄 알았다.”
치우는 입을 다물었다.
경수는 의자를 바로 세웠다.
“송기환 씨 돈은 내일 갖다준다. 니가 뭐라 해도.”
“주십시오.”
“기섭이 몫도.”
치우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경수는 그 늦음을 봤다.
“준다.”
이번에는 묻는 말이 아니었다.
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가 문으로 갔다.
“형님.”
치우가 불렀다.
경수는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치우는 경민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 그 이름을 꺼내면 무슨 뜻으로 들릴지 알았다. 치료비를 도와주겠다는 말도, 안부를 묻는 말도, 그 가족을 다시 자기 손에 올리는 말이 될 것이었다.
“아닙니다.”
치우가 말했다.
경수는 나갔다.
태석은 밤늦게 돌아왔다.
기섭을 병원에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큰돈은 들지 않았지만 치우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치우가 얼마나 들었느냐고 묻자 자기 돈으로 냈다고 답했다.
“왜 니가 내는데.”
치우가 말했다.
태석은 코트를 벗었다.
“내고 싶어서.”
“내가 줄게.”
“싫다.”
치우는 친구를 봤다.
정란은 돈을 받으면서도 고마워하지 않겠다고 했고, 수연은 추가 돈을 거절했고, 태석은 자기가 쓴 돈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와 같은 방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오늘 내가 잘못한 거 안다.”
치우가 말했다.
태석이 그를 봤다.
오랜만에 먼저 얼굴을 들었다.
“그럼 내일 기섭 씨한테 말해.”
치우는 입을 다물었다.
친구에게 인정하는 것과 당한 사람에게 인정하는 것은 달랐다. 기섭이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수도 있었다. 상필이 알 수도 있었다. 인철에게 전해질 수도 있었다.
치우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석은 그의 침묵을 읽었다.
“아는 것만으로 끝낼 거면 모르는 거랑 뭐가 다르노.”
그가 말했다.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경수가 돈을 가져갔다.
약속한 금액을 전부 챙겼다. 기환과 다른 사람들, 기섭의 몫까지. 치우는 그들이 받아들었는지 물었다. 경수는 받았다고 했다.
그것으로 밀린 채무 목록 하나가 지워졌다.
그러나 치우의 이름은 다른 곳에 남았다.
며칠 뒤 이진욱 형사에게 연락이 왔다. 남기섭이 신고했다고 했다. 치우는 수화기를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오, 문수, 기섭.
이름들이 자꾸 늘었다.
형사는 이번에도 날짜를 잡았다. 치우는 수첩에 적었다. 전화를 끊은 뒤 상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고 앞에는 새로운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섭이 하던 일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이곳에서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치우는 한동안 그를 보았다.
이름을 물어야 했다.
그는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앉으십시오.”
자기가 이제 어떤 얼굴로 그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