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받는 사람의 동의
작가: 한봄 (예시용 가상 필명)
창작 방식: AI 생성 · AI가 작성한 오리지널 예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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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은 파란 봉투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도현은 봉투를 집지 않고 손바닥으로 가장자리만 눌렀다. 보리차의 김이 두 사람 사이에서 사라지는 동안, 역 앞을 지나는 버스 한 대가 창문을 흔들었다.
“읽어 줘.”
도현은 봉투를 열었다. 접힌 종이의 바깥쪽은 누렇게 변했고 안쪽은 희었다. 종이에는 서윤이 복원할 때 쓰는 말로 하면, 작은 습기 자국과 오래 반복된 접힘이 있었다. 갖고 다녔거나 자주 꺼냈을 것이다. 서윤은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은 네가 기차를 놓쳐서 좋았어.”
도현이 첫 줄을 읽었다. 목소리가 자신이 쓴 말을 낯설어하는 것처럼 잠깐 느려졌다.
“아침에 서울 가는 기차가 들어올 때는, 네가 안 놓쳤으면 했어. 사탕을 또 줄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물어보면 됐는데 못 물어봤다.”
그가 멈췄다. 서윤은 다음 문장을 기다렸다. 책상 위 종이에는 글이 더 있었다.
“뒤에는?”
“전화번호가 있어. 그리고 아버지한테 이걸 전해 달라고 부탁할까 고민했다고.”
“왜 안 부탁했어?”
“돌아오는 날짜를 정확히 몰랐어. 아버지 무릎 수술 날짜도 잡혔고. 조금 정신이 없다가…….”
도현은 핑계를 끝까지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접힌 선 위로 다시 펼쳤다.
“다음 봄에 네가 왔을 때 이미 일 년 지난 편지잖아. 그때 다시 물었으면 됐는데, 네가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고 혼자 결론을 냈어.”
서윤은 컵에서 손을 뗐다. 도현이 봄마다 어머니 생신을 먼저 물은 이유가 이제야 다른 모양으로 보였다. 늘 엄마를 보러 왔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당연한 답이었으므로, 나머지 이유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는 네가 해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있었잖아.”
“그건 알아. 그래서 더 안 물었어. 다음에도 만나면 되니까.”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우스운 이야기인데 웃음 끝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도현은 편지를 서윤 쪽으로 밀다가 손을 멈췄다.
“가져갈래? 버려도 돼. 지금 대답할 필요도 없고.”
“종이는 내가 보관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접어 두면 여기가 먼저 찢어져.”
서윤이 접힌 가운데를 가리켰다. 도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편지를 문서 사이에 평평하게 놓았다. 내용보다 종이의 상태를 먼저 말한 것이 자신의 버릇이자, 시간을 조금 버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서관의 박 관장이 종이 상자 두 개를 안고 서 있었다. 그는 둘의 컵을 보고는 주전자에 물이 남았느냐고만 물었다. 서윤은 그 평범한 질문이 고마워 얼른 세 번째 컵을 꺼냈다.
“철거 전에 역 자료를 가져오기로 했어요. 사진이나 표 같은 건 도서관 전시실에서 보관할 수 있는데, 신청서에 주민 의견을 좀 붙여 달라네요.”
관장이 상자 위에 서류를 놓았다. 의견란은 비어 있었다. 건물은 군 소유여서 유지 여부를 따로 검토할 수 있지만, 무엇을 위해 남기는지 설명해야 했다.
“다 추억이죠. 그것 말고 구체적으로 쓰라고 하니까 어렵네.”
서윤은 의뢰서 뒷면에 항목을 적었다. 물건의 이름, 만든 해, 보관할 장소, 관리 담당자. 도현이 말한 것과 같았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물건을 남겨 둘 수는 없었다.
“예전 시간표부터 스캔할게요. 사진은 사람 얼굴이 있으니까 공개 동의를 따로 받아야 하고요.”
“그럼 주민분들한테 제가 연락하지요.”
관장은 빈 의견란 옆에 새 종이를 끼웠다. 도현은 창고에 오래된 시간표가 더 있다며 일어났다. 서윤은 그가 문을 나선 뒤에야 편지를 서류에서 분리했다. 편지는 전시 자료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추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창고는 두 걸음을 들어가면 어두워졌다. 서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 도현의 발밑을 비췄다. 그가 높은 선반에서 상자를 내릴 때는 문턱 밖으로 물러났다. 보관 목록을 확인하러 간 것인데, 둘은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위해 한 걸음씩 비웠다.
“그 시계도 신청서에 넣을 수 있을까?”
서윤이 물었다.
“도서관에 놓으면 소리가 커. 톱니가 많이 닳았어.”
“소리를 고칠 수는 있어?”
“고치는 건 돼. 부품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만.”
“그러면 남길 수 있다는 의견으로 써 줘. 비용하고 기간도.”
도현은 시간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군가가 그의 일을 구체적으로 부탁하는 동안, 그는 망설이던 표정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 변화가 서윤에게는 신기했다. 오래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일하는 얼굴은 처음 보았다.
점심을 놓친 뒤늦은 허기는 오후 세 시에 왔다. 역 앞 슈퍼에서 두 사람은 빵과 우유를 골랐다. 도현은 밤빵을 집고, 서윤은 팥빵을 집었다. 계산대 앞에서 서로의 빵을 보며 아홉 해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취향 하나를 고쳤다.
“너 밤 못 먹는 줄 알았어.”
“그때 이가 아파서 안 먹은 건데.”
“나는 팥이 싫은 줄 알았어?”
“네가 내 것까지 먹었으니까 좋아하는 건 알았지.”
서윤이 웃으면서 봉지를 받아 들었다. 역까지 돌아오는 길은 짧아 보였다. 오전에 두 번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인데, 함께 확인할 일이 생기니 끝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도현이 스케치를 하면서 시계의 둘레를 재는 동안 서윤은 사진 모서리를 눌러 폈다. 자료가 책상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오후 네 시 열차가 들어오는 방송이 들렸다. 서윤은 갈 필요가 없었다. 내일이 어머니 생신이었다.
그럼에도 도현의 손이 멎었다.
“오늘 서울 가?”
“내일 오후.”
“그렇구나.”
그가 자를 다시 잡았다. 서윤은 그 짧은 말에 자신이 놓치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다. 기다림을 기대라고 부르려면 둘 다 알아야 했다.
“도현아.”
“응.”
“다음 주 화요일에 도서관 와 줄 수 있어? 사진 소유자분들이 그날 오신대. 시계 얘기도 설명해 주면 좋겠어.”
“화요일이면…… 오후 두 시 이후는 돼.”
“설명 끝나고 나랑 커피도 마실래?”
자가 스케치 아래로 미끄러졌다. 서윤은 그가 날짜를 틀리게 알아듣지 않도록 덧붙였다.
“내년 봄 말고, 다음 주.”
도현은 수첩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윤이 보는 앞에서 시간을 적었다.
화요일 오후 세 시. 서윤.
“연락처도 알아야겠네.”
그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서윤은 번호를 누르기 전에 파란 봉투를 한 번 보았다. 오래된 전화번호 위에 새로운 번호가 생기고 있었다.
발신 버튼을 누르자 서윤의 전화가 울렸다. 저장하지 않은 번호 아래로, 서울 복원실에서 기다리던 메일 알림이 내려왔다.
‘상근 계약 최종 제안. 회신 기한: 다음 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