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증인의 겨울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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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석은 먼저 검사를 만나고 왔다.
치우에게 묻지 않았고 다녀온 뒤에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창고의 전등이 나가서 둘이 촛불을 켰을 때야 입을 열었다. 겨울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와 불꽃이 자꾸 기울었다.
“윤재헌 검사.”
태석이 말했다.
치우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봤다.”
치우는 손에 들고 있던 성냥갑을 내려놓았다.
누가 불렀느냐고 물을 뻔했다. 어떤 말을 했느냐고, 왜 먼저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뻔했다. 질문들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멈췄다.
친구의 얼굴이 그것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우는 가장 덜 화난 말부터 골랐다.
“어땠노.”
태석은 촛불을 보았다.
“말 잘 듣더라.”
치우가 웃었다.
태석은 웃지 않았다.
“니처럼 들었어.”
그 말에 치우의 웃음이 사라졌다.
태석은 자기가 거짓말했던 처음부터 말했다고 했다.
성오에게 빚을 깎아 준다는 말을 들은 것. 치우가 돈을 가져갔다고 한 것. 사무실에 데리고 간 것. 성오가 죽었을 때 도망가지 못한 것.
문수의 마지막 밤도 말했다.
기섭을 불러 놓았던 날도 말했다.
검사는 끼어들지 않았다고 했다. 중간에 태석이 같은 말을 반복해도 기다려 주었다고 했다. 다 듣고 나서 처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왜 지금도 치우 옆에 있느냐.
치우는 친구를 보았다.
“뭐라 했는데.”
태석은 무릎 위의 손을 펴 보았다.
“모르겠다 했어.”
치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모른다는 말은 대개 상대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윤재헌에게 했던 말도 그랬다. 그러나 태석은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모를 수도 있나.”
치우가 물었다.
“니는 다 알고 하냐.”
태석이 되물었다.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촛농이 낡은 접시 위에 떨어졌다.
태석은 이번에는 자기도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자수인지 진술인지 치우는 구분하려고 했다. 친구는 그런 이름에 관심이 없었다. 변호사를 만나 무슨 책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돈은 있나.”
치우가 물었다.
태석이 그를 봤다.
“그거부터 묻네.”
“필요하면 주겠다고.”
“니 돈으로 니 얘기하러 가면 이상하잖아.”
치우는 성냥갑을 만졌다.
태석은 이미 필요한 만큼 조금 모아 두었다고 했다. 모자라면 빌릴 사람도 있다고 했다. 치우는 누구에게 빌리는지 알고 싶었다.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자신이 모르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견뎌야 했다.
“다 말하면 나도 곤란해진다.”
치우가 말했다.
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알고도 하는 거가.”
“니가 다 하면 나도 곤란해져. 그건 생각했나.”
치우는 친구를 보았다.
태석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화가 지나간 뒤에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성오 죽던 날부터 내 하루가 다 니 눈치야. 니가 살면 나도 살고, 니가 무슨 말 하면 나는 거기 맞춰야 하고. 나는 내가 거짓말한 것만 갚으면 될 줄 알았다.”
그는 손으로 눈가를 눌렀다.
“근데 자꾸 새 빚이 생겨.”
치우는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면 태석이 떠날 것 같았다.
그들은 수연의 새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정전된 창고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였다. 수연의 가게는 예전보다 좁았고 주방과 홀 사이에 문이 없었다. 음식 냄새가 옷에 더 진하게 배었다.
수연은 두 사람을 보고 빈자리를 가리켰다.
치우에게도 태석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앉아.”
그 단어가 창고에서와 다르게 들렸다.
태석은 반찬을 집으며 새 가게는 어떠냐고 물었다. 수연은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쉬운 줄 알았느냐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피곤하지만 자기 피곤함인 사람의 웃음이었다.
치우는 국을 먹었다.
수연이 물었다.
“너는 얼굴이 왜 그러노.”
치우는 대답하기 전에 태석을 봤다.
수연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태석이한테 물은 거 아니다.”
치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럼 자.”
간단한 말이었다.
잠을 못 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고, 자신이 큰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틈도 주지 않았다. 치우는 그게 편하면서 불편했다.
태석은 옆에서 밥을 다 먹었다.
두 그릇의 바닥이 비슷한 시간에 드러났다.
아무 일도 없었던 시절 같았다.
그런 시절이 실제로 얼마나 길었는지 치우는 기억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눈이 아주 조금 날렸다.
쌓일 만큼은 아니었다. 부산에서 흔하지 않은 광경에 태석이 고개를 들었다. 치우도 따라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 안에서 흰 점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니 변했다.”
태석이 말했다.
치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고 일어난 그날부터.”
친구는 치우를 보았다.
“전에는 니가 어떤 생각 하는지 다 알았는데. 지금은 모른다.”
치우는 전생을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이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았고, 수많은 사람을 지배했고, 죽었다고 믿었던 순간 이 몸의 기억과 만났다고. 그렇게 말하면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이 설명될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핑계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었다.
강치우의 손을 움직인 것은 지금의 자신이었다.
엘치우를 말한다고 태석의 거짓말이나 성오의 죽음이 다른 세계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나.”
치우가 물었다.
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도 좋진 않았어.”
그가 말했다.
“그냥, 다음이 좀 달랐으면 좋겠다.”
치우는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을 보았다.
그날 타지 않은 버스가 다시 오는 것 같았다.
태석은 이번에도 타지 않았다.
창고에 전기가 돌아왔을 때에는 밤이 깊었다.
책상 위에 윤재헌 쪽에서 전달된 출석 일정이 놓여 있었다. 치우는 날짜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기록을 남기는 자리였다.
태석이 그 종이를 보았다.
“니 얘기도 해.”
그가 말했다.
치우는 종이를 접었다.
“할 거다.”
“어디까지.”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사에게 무엇을 말할지 이미 생각해 두었다. 인철이 문수의 빚을 넘긴 일. 상필이 돈을 잃은 뒤 치우에게 왔던 일. 경수가 현장 일을 맡았다는 사실.
모두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서 자신이 무엇을 결정했는지를 얼마나 말할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태석은 그 침묵을 보았다.
“사실만 골라서 사람 속일 수도 있더라.”
치우가 친구를 봤다.
“니가 가르쳐 줬다.”
태석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코트를 입었다.
치우는 그를 붙잡았다.
손목을 세게 잡지는 않았다. 그래도 태석은 움직임을 멈췄다.
치우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가지 말라고.
나를 믿으라고.
네가 알고 있는 강치우도 아직 여기 있다고.
어느 말도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손을 놓았다.
태석은 문을 열고 나갔다.
치우는 잠깐 전생의 식탁을 떠올렸다.
라파엘은 생일이면 늘 잔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엘치우가 죽인 동료의 자리라고 농담했다. 처음에는 치우도 웃었다. 어느 해에는 그 잔을 치우라고 화를 냈고, 라파엘은 웃음을 거둔 채 잔을 가져갔다.
그 뒤부터 생일 식탁에 빈 잔은 없었다.
치우는 그것이 라파엘을 길들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날 사라진 것은 잔이 아니라, 자신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던 동료였다. 곁에 남은 라파엘은 전보다 공손했고, 자신이 죽던 날에는 보이지 않았다.
태석의 자리를 비워 둔 채 치우는 한동안 앉아 있었다.
친구가 듣기 싫은 말을 해 준다는 사실을 고맙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치우는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약해지면 누군가가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밀려오자 친구의 빈 의자보다 내일의 검사가 더 크게 보였다.
그는 전화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
경수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 뒤였다.
치우는 늦은 시간이라 미안하다고 했다. 경수는 잠들지 않았다고 했다. 경민의 치료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고 했다.
치우는 잠깐 말을 멈췄다.
전화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경수의 집에 없던 물건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묻자 동생이 있는 곳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함께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혼자 가까이 남아 있는 형.
치우는 그 사정을 들으며 자신이 하려는 말이 어떤 모양이 될지 알았다.
“검사 만납니다.”
그가 말했다.
“들었다.”
“형님 이름도 나올 겁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경수가 물었다.
“니가 말해서?”
치우는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기록에 이미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부는 아니었다.
경수는 한참 뒤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지금 뭘 해 달라는 건데.”
치우는 눈을 감았다.
이 순간에도 멈출 수 있었다. 자신의 결정과 역할을 모두 말하면 됐다. 남이 한 일과 자기가 한 일을 함께 내려놓으면 됐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같이 얘기 좀 하시죠.”
치우가 말했다.
“내일.”
경수는 알겠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은 뒤 치우는 촛불이 꺼진 접시를 치웠다. 굳은 촛농 가운데 검게 탄 심지가 남아 있었다.
태석이 남기고 간 자리는 비어 있었다.
치우는 그 자리에 경수의 이름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