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내 말을 믿는 친구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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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내 자리에 귤 두 개를 놓았다.
아버지가 가져왔던 것보다 작았다. 껍질에 초록색이 남아 있었다.
“엄마가 한 상자를 보냈어. 나 혼자 먹다가는 손까지 노래질 것 같아서.”
나는 하나를 집었다. 서랍에 넣으려는데 수진이 손을 막았다.
“거기 넣으면 또 까먹잖아.”
수진은 자기 가방에서 귤을 하나 더 꺼냈다. 우리는 창구가 열리기 전에 하나씩 까 먹었다. 신맛에 내가 눈을 감자 수진이 웃었다. 그녀는 아직 내 앞에서 그렇게 웃을 수 있었다.
강혜주를 만난 지 이틀이 지났다.
그사이 내 휴대전화에는 새로운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 침묵을 자꾸 확인했다. 수진이 다음 조각을 내밀 때에도 화면부터 내려다봤다.
“기다리는 전화 있어?”
나는 없다고 했다.
* * *
점심시간에 수진은 휴가 신청서를 쓰겠다고 했다.
오래 미뤘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했다. 친구 하나가 취소해서 숙소에 자리가 남았다는 말도 했다.
“사흘이야. 네가 전에 사진 보고 가고 싶다던 데.”
나는 어디냐고 물었다.
수진이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찾았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숙소였다. 창틀에 파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우리는 몇 달 전에 그 사진을 보며 잠깐 떠들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 같았다.
사진 속 창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언제 가는데?”
수진이 날짜를 말했다.
칠월 초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더 넘겼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이었다.
* * *
“그때는 잘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지금 정해야 하는 건 아니야. 오늘 저녁까지 생각해 봐.”
“생각해도 같을 것 같아서.”
수진의 손이 멈췄다.
나는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그녀는 화면을 끄지 않은 채 테이블에 놓았다.
“물어봐야 해?”
“누구한테.”
“네 남편.”
나는 아니라고 했다. 너무 빨리 나온 대답이었다. 수진은 그 뒤에 붙을 말을 기다렸다. 나는 국을 떠먹었다. 뜨겁지 않았다.
“그럼 네가 가기 싫은 거야?”
그녀가 물었다.
나는 바다 사진을 다시 봤다.
“싫은 건 아니야.”
* * *
수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은재야.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네가 뭘 원하는지 물으면 다른 얘기부터 해.”
나는 내가 그렇게 어렵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어려운 게 아니라, 대답을 안 해.”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웃었다. 나는 그쪽을 봤다가 돌아왔다. 수진은 목소리를 낮췄다.
“안 가겠다고 하면 돼. 네가 안 가고 싶은 거면.”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안 갈게.”
수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을 껐다.
그녀가 그렇게 쉽게 제안을 거두자 나는 이상하게 서운했다. 더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물을 마셨다.
* * *
식당 밖에서 수진이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빈자리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자 그녀가 웃었다. 숙소 값을 나눌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내가 가지 않는 여행이 내 앞에서 완성됐다.
수진은 전화를 끊고 내 팔꿈치를 가볍게 건드렸다.
“커피 마실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카페 문을 열었다. 나는 뒤따라 들어가면서 그 손을 보았다. 남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손이었다. 나도 그렇게 하던 때가 있었다.
수진은 주문대 앞에서 내 것을 묻지 않았다. 내가 늘 마시던 것을 주문하려다가 뒤돌아봤다.
“오늘도 같은 거?”
나는 그렇다고 했다.
* * *
커피가 나오는 동안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고 표정이 달라졌다. 수진은 나를 한번 봤다.
“잠깐만.”
그녀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주문대 앞에 남았다. 매장이 작아서 낮은 목소리도 몇 마디는 들렸다. 정민의 이름이 나왔다. 수진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은행에 왔던 날의 일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컵 두 개를 받았다.
컵 하나를 들고 있는 손바닥이 뜨거웠다. 종이 덮개를 더 잡아 올리는데 수진이 돌아왔다.
“그쪽에서도 나한테 연락하네.”
“경찰이야?”
“응.”
나는 수진의 커피를 내밀었다.
* * *
그녀는 정민이 은행에 왔던 일을 물었다고 했다.
“내가 본 대로 말했어.”
나는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수진은 빨대를 뜯다가 나를 봤다.
그녀는 그날 그가 내 길을 막았던 것과 자기가 끼어들었던 일을 말했다. 내가 불편해 보였다는 말도 했다고 했다.
“네가 부르지 않았는데 찾아온 거라고 했어. 그건 맞잖아.”
나는 맞다고 했다.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네가 걔한테 시달린 걸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는 컵 뚜껑의 작은 구멍을 보았다.
커피가 그 안에서 흔들렸다.
* * *
“계속 시달린 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수진이 눈을 들었다.
“그날 말고는 안 왔다는 뜻이야?”
“헤어진 뒤에 매일 그러지는 않았다고.”
그녀는 내가 왜 그 말을 꺼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어디까지 말하려는지 몰랐다.
“그날은 네가 싫다고 했는데도 안 갔잖아.”
“알아.”
“그걸 말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은 컵을 테이블에 놓았다. 우리는 잠깐 앉았다 가기로 한 것도 아닌데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마지막에 사과했다는 말을 했다.
* * *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났을 때. 시계 돌려주러 갔을 때 그랬어.”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한마디 뒤에 긴 침묵이 왔다.
나는 정민이 결혼을 축하한다고 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말에 내가 어떤 얼굴을 했는지도 떠올랐다. 수진이 내 손등을 건드렸다.
“그렇다고 네가 걔한테 빚진 건 아니잖아.”
나는 손을 뺐다.
수진의 손이 허공에 잠깐 남았다.
그녀는 자기 컵으로 손을 옮겼다.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 * *
“내가 너한테 잘못 말한 게 있어?”
수진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자꾸 그래.”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졌다.
“너랑 얘기할 때마다 내가 뭘 밟았는지 모르겠어. 괜찮다고 해도 싫어하고, 안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싫어하고.”
나는 컵을 두 손으로 잡았다.
“네 잘못은 아니야.”
수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 말도 그녀는 싫어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무엇이든 네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면 내가 아무것도 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봤다.
은행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우리는 같이 일어났다.
카페 문을 나서기 전에 내가 수진을 불렀다.
그녀가 돌아봤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잠깐 잊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정민이 쓰러진 뒤에도 도하가 멈추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시계를 가져왔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수진은 기다렸다.
나는 다른 말을 했다.
“나를 너무 좋게 생각하지 마.”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수진은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럼 내가 뭘 알면 되는지 말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 * *
횡단보도에서 우리는 떨어져 섰다.
수진이 먼저 말했다.
“나한테 믿으라고 하지는 마.”
나는 그녀를 봤다.
“믿지 말라고 하지도 말고. 네가 말을 안 하면 난 내가 아는 것밖에 몰라.”
신호가 바뀌었다.
수진은 길을 건넜다. 나는 반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그녀는 내 걸음에 맞추려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은행 앞에 도착했을 때 내가 여행은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수진이 알겠다고 했다.
그녀는 출입증을 꺼냈다. 내가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내가 손을 뻗어 잡았다.
* * *
오후에 나는 수진에게 서류 한 장을 물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답했다. 내가 놓친 칸을 짚어 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손님 앞에서 얼굴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되자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가방을 메고 다른 동료와 나가고 있었다. 여행 이야기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 책상에는 귤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넣지 않았다. 퇴근하기 전에 껍질을 벗겼다. 오전보다 덜 시었다.
한 조각을 먹고 다음 조각을 쥔 채 오래 앉아 있었다.
* * *
집에 돌아오니 도하가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수진이랑 싸웠어요.”
그가 컵을 내려놓았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전화하지 마요. 찾아가지도 말고.”
도하가 나를 보았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현관 바닥에 귤껍질 조각이 떨어졌다. 가방 안으로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내가 허리를 굽혀 주우려는데 도하가 먼저 손을 뻗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막았다.
내가 주웠다.
* * *
저녁을 먹고 수진에게 문자를 썼다.
오늘 미안했다는 말로 시작했다. 지웠다. 다시 썼다. 내가 잘 설명하지 못했다는 말도 써 봤다. 그것도 지웠다.
도하는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누구에게 문자를 쓰는지 묻지 않았다. 내가 쓰다 지우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컵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나는 귤이 맛있었다고만 보냈다.
한참 뒤 수진에게 답장이 왔다.
많이 먹으라는 말이었다.
이모티콘은 없었다.
나는 그 짧은 답을 도하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 * *
잠들기 전에 그는 내 방문 앞에 섰다.
“내가 뭘 하면 됩니까.”
나는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를 옆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요.”
도하는 그 말을 들었다. 문틀에 댔던 손을 거두었다.
그가 돌아설 때 내가 불렀다.
그는 멈췄다.
나는 잠깐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방 안에서는 전화가 더 울리지 않았다. 손을 잡으면 그가 잡아 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다.
도하가 내 손을 잡았다.
그가 잡아 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수진에게 끝내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