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남겨 둔 이름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공개: · 수정:
임정희는 검은 옷을 입지 않았다.
누런 바람막이와 운동화 차림이었다. 손에는 병원에서 받아 온 듯한 흰 봉투가 있었고, 창고 문턱에서 신발의 흙을 털었다. 처음 보는 곳에 들어갈 때 몸에 밴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강치우 씨.”
치우는 일어났다.
“접니다.”
“성오 누나입니다.”
뒤에서 컵을 닦던 태석의 손이 멈췄다.
정희는 서른한 살이라고 했다. 성오와는 네 살 차이였다. 그 이름과 나이를 들었을 때 치우는 죽은 사내에게도 태어난 순서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생각했다. 누군가보다 늦게 태어나서, 누군가의 동생으로 살던 시간.
자기가 알던 성오는 그 시간 끝의 짧은 부분이었다.
“여기 앉으십시오.”
치우는 파란 의자를 내주었다.
정희는 앉지 않았다.
“문수 씨한테 들었어요. 마지막에 같이 있었다고.”
치우는 손을 의자에서 뗐다.
문수는 시작한 것이다.
자기 손에 남겨 둔 죽음을 천천히 보여 주는 일. 누가 찾아오게 하고, 무엇을 묻게 하고, 치우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지켜보는 일. 문수는 이 자리에 없어도 됐다.
“예.”
정희는 봉투를 양손으로 쥐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들으려고요.”
태석이 창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계세요.”
정희가 말했다.
“태석 씨도 같이 있었다면서요.”
태석은 문 앞에서 멈췄다.
치우는 정희가 알고 있는 것부터 물었다.
그녀는 성오가 싸움에 휘말려 죽었다고 들었다. 평소 원한이 있던 사람도 있었고, 술을 마시면 좋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문수는 자신이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장례를 치른 뒤에도 달라진 설명은 없었다.
“저한테는 뭐든 말해도 됩니다.”
정희가 말했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소리 듣고 싶어서 온 거 아니에요.”
치우는 그 말이 가장 어려웠다.
죽은 사람을 좋게 기억하고 싶은 가족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강했다거나, 누군가를 걱정했다거나, 괜한 싸움에 말렸다는 이야기. 정희는 그런 이야기들을 미리 거절했다.
“저를 때렸습니다.”
치우가 말했다.
정희의 시선이 그의 입술로 갔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날도요?”
“예.”
“왜요.”
“돈을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제가 안 가져갔는데.”
정희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성오가 그런 일을 한 건 알아요.”
치우는 그 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거랑 죽는 건 다른 얘기잖아요.”
치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전생에는 두 일이 같다고 믿었다. 자기 사람을 때린 사람, 자기 돈을 건드린 사람, 자기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 죽일 이유가 늘 있었고, 죽은 뒤에는 그 이유만 남았다.
정희는 이유 말고 그날 있었던 일을 물었다.
“제가 죽였습니다.”
치우가 말했다.
태석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정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너무 뜻밖이면 사람은 표정을 잃는다. 치우는 그런 얼굴을 본 적 있었다. 살려 달라는 부탁에 이미 죽었다고 대답해 주었을 때였다. 그때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정희가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싸우다가 제가 죽였습니다.”
그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한 문장을 빼자 자백이 정당방위처럼 들렸다.
치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정희는 한동안 봉투를 열었다 닫았다.
안에는 성오의 사진이 있었다. 증명사진과 비슷한 작은 사진이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찍은 듯 얼굴 한쪽이 창백했다. 정희는 그것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이거라도 보고 말해 주세요.”
치우는 사진을 보았다.
살아 있는 성오는 사진보다 더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큰 목소리, 남이 웃지 않으면 화내던 웃음. 치우의 어깨를 발로 밀면서도 자기 전화가 오면 다정하게 목소리를 바꾸던 사람.
사진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미안합니까.”
정희가 물었다.
치우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고. 평생 갚겠다고. 자기도 밤에 잠을 못 잔다고.
그 말들이 정희에게 얼마만큼의 값이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에게는 값싼 말이었다. 치우는 그래서 입을 열지 않았다.
정희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고였다.
“그것도 아니구나.”
그녀는 사진을 다시 넣었다.
치우는 급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럼 경찰에 말하면 되잖아요.”
방 안에 바깥 소음이 들어왔다. 트럭이 후진하는 소리, 누군가 욕하는 소리, 골목 아래 라디오의 노래. 세상은 이 대답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치우는 경찰에 가면 자기 말이 받아들여질지 몰랐다. 문수와 태석이 무엇을 말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남아 있고 싶었다.
이곳에서 성오보다 위에 앉고 싶었다.
정희는 그의 침묵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문수 씨가 돈을 준대요.”
그녀가 말했다.
“장례비도 보탰다고. 이제 조용히 살라고.”
치우는 눈을 들었다.
“안 받으셨습니까.”
“받았어요.”
정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례는 해야 되니까.”
치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물어보면 안 되는 겁니까?”
목소리가 높아졌다.
“돈 받았으니까, 동생이 왜 죽었는지 묻지도 말라는 거예요?”
태석이 한 발 다가왔다가 멈췄다.
정희는 울면서도 치우를 똑바로 보았다. 돈을 받은 자기 잘못까지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세워졌다는 것이 더 화가 나는 사람처럼.
치우는 전생에 수도 없이 그런 자리를 만들었다.
경수가 왔을 때 정희는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경수를 알고 있었다. 성오가 누나 집에 갔을 때 한두 번 같이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경수는 정희를 보자 모자를 벗었다.
“누나.”
“너도 알았니.”
경수는 치우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정확히는 못 들었습니다.”
“다들 정확한 건 모르네.”
정희가 말했다.
“죽은 사람만 정확하게 없어졌는데.”
그녀는 문턱에 서서 가방을 열었다. 작은 공책을 꺼냈다. 성오가 쓰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었다. 치우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전화번호.”
정희가 말했다.
“강치우 씨 연락받을 번호요.”
치우는 창고에 전화가 없다고 답했다.
“그럼 주소.”
그는 주소를 말했다. 정희는 천천히 받아 적었다.
태석이 자기 이름도 적겠다고 했다. 정희는 쳐다보지 않고 이름을 적었다. 경수의 이름도 적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날짜를 위에 썼다.
문수에게 받은 돈의 액수보다 사람 이름을 적는 일이 더 무서워 보였다.
“언젠가 설명이 달라지면 제가 알 수 있게요.”
정희는 공책을 덮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나갔다.
경수가 뒤따라갔다. 치우는 문밖에 서서 두 사람을 보았다. 경수는 정희에게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그녀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치우는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 늘어났다.
이번에는 돈으로도 이름을 지우지 못했다.
문수는 전화로 치우를 불렀다.
정확히는 당구장 사람이 창고로 와서 문수가 부른다고 했다. 치우는 수화기를 들었고, 문수는 안부도 없이 물었다.
“정희 왔다 갔나.”
“예.”
“뭐라 하더노.”
“동생 왜 죽었는지 물었습니다.”
“뭐라 했는데.”
치우는 창밖을 보았다. 태석이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요즘 친구는 치우가 보이는 곳에서는 자꾸 손을 비워 두었다.
“제가 죽였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침묵에 치우는 작은 만족을 느꼈다. 문수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곧 욕설이 돌아왔다.
“정신 나갔나.”
“형님이 저한테 보냈으니까요.”
“누가 그렇게 말하랬는데.”
“뭐라고 말할지는 안 알려 주셨습니다.”
문수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치우는 수화기를 바꾸어 들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문수를 도발하는 것은 통쾌함보다 두려움이 큰 일이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형님이 정희 씨한테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무슨 말.”
“저 혼자 한 일이 어디까지인지요.”
문수가 낮게 욕을 했다.
“오늘 밤에 보자.”
통화가 끝났다.
치우는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자백으로 문수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다. 자기 목에 걸린 줄을 당겨 같은 줄의 다른 끝을 보여 준 것뿐이었다.
문수가 그 줄을 놓아줄 사람은 아니었다.
창고로 돌아오자 태석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정희 누나 경찰서 갈 것 같다.”
“가겠지.”
“그럼 우리……”
치우가 친구를 보았다.
태석은 말을 삼켰다.
우리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허락을 기다리는 표정이 되었다. 치우는 그것이 자신이 만든 얼굴이라는 것을 알았다.
“니는 본 대로 말해.”
“진짜로?”
“내가 맞았고, 성오 형이 죽었지. 니가 돈 가져갔다고 거짓말 한 것도 말하고.”
태석의 눈이 흔들렸다.
치우는 그런 친구를 보고 안심했다.
태석은 진실을 말하면 자기 죄도 말해야 했다. 충성보다 오래가는 것은 함께 진 빚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는 척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집에 일찍 가라.”
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같이 있을게.”
치우는 더 권하지 않았다.
밤이 되어 창고의 불을 껐다.
치우는 낮에 정희가 서 있던 자리에 잠깐 멈췄다. 사진을 놓았던 탁자에 네모난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손으로 문질러도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하냐고 물었다.
그때 대답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잠깐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정희가 그의 침묵을 보았다.
전생에는 누군가를 죽인 뒤 자신의 이름이 남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불편했다.
임성오.
치우는 속으로 그 이름을 말했다.
그를 죽이려 했던 사람. 치우를 때리던 사람. 임정희의 동생.
세 문장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창고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문수가 보낸 차였다.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갈까.”
치우는 고개를 저었다.
“문 잠가라.”
그는 열쇠를 친구에게 건넸다.
손을 펴는 순간 태석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다시 믿어 주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다.
치우는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