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이름 없는 장례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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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까지 엘치우는 정전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의 등이 꺼졌고, 복도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엘치우. 손을 보이라는 명령보다 그 이름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 본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붙인 이름. 돈을 빌릴 때, 아들을 풀어 달라고 할 때, 죽일 사람을 고를 때 쓰던 이름이었다.
그는 손을 들지 않았다. 벌써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문 안으로 들어온 사내의 조끼에 세 글자가 보였다. DEA. 그 뒤로 열린 문들이 끝없이 겹쳤다.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 믿었던 방까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신은 총소리보다 훨씬 먼저 끝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얼굴은 라파엘이었다.
없었다.
그 사실이 총에 맞는 것보다 더 아팠다.
눈을 뜨자 곰팡이가 보였다.
천장이 낮았다. 물에 젖은 자국이 형광등 주위로 번져 있었다. 엘치우는 양손을 들어 보았다. 왼쪽 새끼손가락에 있어야 할 흉터가 없었다. 굵은 금반지도, 손목의 수술 자국도 없었다. 손등은 갈라졌고 손톱 밑이 검었다.
젊은 사람의 손이었다.
“치우야.”
누군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라. 성오 형 기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볼에 여드름 자국이 남은 사내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스물셋. 이름은 박태석. 국민학교 운동장, 겨울 개울, 반씩 나눠 먹던 계란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모르는 얼굴인데 알고 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다른 언어로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엘치우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왜 그러는데?”
“오늘이 며칠이고.”
목소리가 저절로 이 동네 말을 골랐다.
태석이 탁자 위 달력을 가리켰다. 1998년 3월. 빨간 원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집세라는 글자가 있었다.
“머리 다쳤나? 어제도 물어보더니.”
치우는 구석의 거울을 보았다. 스물두 살의 얼굴이 있었다. 광대뼈 아래가 부어 있었고 오른쪽 입술이 터져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강치우. 달동네 셋방에 살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 없고, 오문수 밑에서 술값 대신 맞기도 하는 사람.
그리고 바다 건너에서 마흔여섯 해를 살다가 죽은 사람.
두 생의 기억은 섞이지 않았다. 서로를 밀어내며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제 내가 왜 맞았지.”
“술 취해서 시비 걸었잖아.”
태석은 빨리 대답했다.
너무 빨랐다.
치우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성오가 부른 곳으로 갔고, 누가 돈을 가져갔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가져가지 않았다고 하자 두 번째 질문은 없었다. 그 뒤로 기억이 끊겼다.
그는 침대라 부르기 어려운 요에서 몸을 일으켰다. 속이 뒤집혔다. 전생에서 배운 것은 몸을 지켜 주지 않았다. 이 몸은 배고팠고 다쳤고 두려워했다.
“오늘 첫 배달이다. 말만 잘 들으면 된다.”
태석이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치우는 알았다.
친구는 자기 말을 믿어 달라고 웃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미리 웃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골목 아래 비디오 대여점 셔터에 임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국밥집 창문에는 주인이 직접 쓴 점심 특선 가격이 두 번 고쳐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여유가 없었다. 치우가 아는 부산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가난해질 때, 가장 먼저 주인이 바뀌는 것은 사람의 시간이었고 그다음은 자존심이었다.
그 생각은 엘치우의 것이었다.
그러나 어깨를 웅크리는 습관은 강치우의 것이었다.
태석은 골목 끝의 오래된 사무실까지 앞장섰다. 치우는 도망갈 수 있는 순간을 세지 않았다. 따라가지 않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생각했다. 셋방, 밀린 집세, 문수의 손에 있는 빚. 스물두 살의 자신에게는 달아난 뒤의 삶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발걸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사무실 안에는 임성오 혼자 있었다. 책상 위의 담배가 타고 있었고 벽시계는 멈춰 있었다. 성오는 치우를 보자 미간부터 찌푸렸다.
“안 죽었네.”
태석이 문을 닫았다.
치우가 물었다.
“제가 죽어야 했습니까?”
성오의 눈이 태석 쪽으로 갔다. 아주 잠깐이었다. 어제의 강치우라면 놓쳤을 만큼 짧은 시선이었다.
“말버릇 봐라.”
성오가 일어났다. 책상 모서리에 누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입구에 적힌 숫자가 보였다. 백만 원. 치우는 봉투보다 그 옆의 젖은 우산을 더 오래 보았다. 성오는 금방 도착한 참이었다. 기다리면서 마음을 굳힌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귀찮아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전생에 너무 많이 보았다.
대부분 자기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태석아.”
치우가 불렀다.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달은 어디 가는데.”
“일단 형 말 들어.”
“나는 니한테 물었다.”
태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성오가 치우의 뺨을 때렸다. 머리가 돌아갔고 터졌던 입술 안으로 피 맛이 번졌다. 기억은 고통을 줄여 주지 않았다. 치우는 벽에 손을 짚었다.
“뭐 되는 줄 아나. 문수 형이 너 데려다준다고 사람이 된 거 같나?”
성오가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태석은 말리지 않았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나중에 치우는 그 순간을 여러 번 다르게 기억하려고 했다.
겁에 질려 아무 생각도 못 했다고. 우연이었다고. 살려고 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첫 번째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성오가 잠깐 등을 돌렸을 때, 문까지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갈 수도 있었다. 문을 열고, 골목으로 뛰고, 아무에게나 살려 달라고 소리칠 수도 있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도망가면 다시 막내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살려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
치우는 그보다 성오가 죽는 쪽을 택했다.
방 안이 뒤집혔다. 책상이 밀렸고, 재떨이가 깨졌고, 태석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벽시계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지막에 들린 소리는 유리 소리도 비명도 아니었다.
치우 자신의 숨이었다.
성오가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치우는 주저앉아 성오의 신발을 보았다. 한쪽 끈이 풀려 있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보다 그 끈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불과 조금 전까지 스스로 묶을 수 있었던 물건이었다.
“치우야.”
태석의 목소리가 아이처럼 갈라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가 아니었다. 태석은 스물셋이었고 치우는 스물둘이었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다른 이름을 붙여 줄 나이는 오래전에 지났다.
“니 지금 뭘 한 건데.”
치우는 친구를 올려다보았다.
“니가 기다리던 일이랑 반대로 된 거.”
태석이 한 발 물러섰다.
그 반응을 보고 치우는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처음 느꼈다. 곧바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기쁨과 구역질이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오문수는 삼십 분 뒤에 왔다.
사무실 문을 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들어온 빛이 그의 검은 구두를 비췄다. 문수는 성오를 보고, 태석을 보고, 마지막으로 치우를 보았다.
“설명해라.”
태석이 입을 열었다.
치우가 먼저 말했다.
“성오 형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죽였습니다.”
태석이 숨을 삼켰다. 문수는 치우의 얼굴에서 변명을 찾았다. 없자 불쾌한 듯 눈썹을 움직였다.
“니가 뭘 망쳤는지 아나.”
“형님 사람 하나 죽었습니다.”
“그게 다가?”
“형님이 시키신 일이면 사람 둘이 없어질 일이 하나로 줄었고, 안 시키신 일이면 형님 모르게 사람 죽이려던 놈이 없어졌습니다.”
문수가 걸어와 치우의 멱살을 잡았다. 치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전생의 위엄 같은 것은 이 몸에 없었다. 발끝이 바닥에서 들렸고 숨이 막혔다.
“누구 앞에서 주둥이를 놀리노.”
치우는 간신히 숨을 들이켰다.
“형님 앞이니까 말합니다.”
문수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그 눈에는 슬픔이 없었다. 성오를 잃은 분노보다, 어제 때려 놓은 막내가 오늘 계산을 하고 있다는 불쾌함이 컸다. 치우는 그 불쾌함을 이해했다. 부하에게 계산을 허락한 적 없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자신도 그랬다.
문수가 손을 놓았다. 치우는 무릎을 꿇고 기침했다.
“성오한테 시킨 건 니 입 단속이다. 죽이라는 소린 안 했다.”
“그럼 제가 너무 오래 살까 봐 자기 판단을 한 거겠지요.”
문수가 발로 그의 어깨를 밀었다.
치우는 옆으로 넘어졌다. 참는 게 용기여서 참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길 수 없어서 참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시간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수는 책상 위 봉투를 집었다.
“태석아. 나가 있어라.”
친구는 치우를 보았다. 나가도 되느냐고 묻는 눈이었다. 치우는 아무 표정도 주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전에는 눈을 못 들더니.”
문수가 말했다.
“오늘은 말이 많네.”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뭘.”
“안 봐도 때리고, 봐도 때린다는 거.”
문수는 웃지 않았다.
치우는 한참 뒤에 사무실을 나왔다.
그가 경찰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문수가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둘은 성오의 죽음을 두고 말했지만 실제로 나눈 것은 앞으로 누가 누구에게 쓸모가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그것으로 충분한 세계였다.
적어도 문수는 그렇게 믿었다.
골목 처마 아래에서 태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려다 손이 떨려 불을 붙이지 못했다. 치우가 옆에 서자 태석은 담배를 구겼다.
“괜찮나.”
치우는 웃을 뻔했다.
“그걸 니가 물어보나.”
태석이 고개를 숙였다.
치우는 주머니에 든 봉투를 만졌다. 백만 원. 문수는 마지막에 그것을 바닥으로 던졌다. 죽은 성오가 받으려던 돈이라고 했다. 태석의 두 달치 빚보다 많고, 엘치우가 하루 동안 잃어버리던 돈보다 적었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데에는 그 정도면 됐다.
그런 생각이 너무 자연스러워 치우는 잠깐 눈을 감았다.
두 번째 삶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누가 물었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을 향해 달아나지 않은 순간부터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비가 그쳤다.
태석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데.”
치우는 손을 떼어 내지 않았다.
“우리?”
그 한마디에 태석의 얼굴이 무너졌다.
치우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았다. 전생에 자신이 죽을 때 라파엘은 없었다. 이번에는 배신한 친구를 눈앞에 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