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계약서 3조
작가: 뉴비
창작 방식: AI 생성 ·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AI가 본문을 생성하고, AI 검수를 거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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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3조. 밤 11시부터 6시까지 같은 침대에서 잔다. 도망치면 위약금 40억.”
나는 마지막 숫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앞에는 이십억이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도 이십억, 석 달 뒤 이혼하면 내가 받을 돈도 이십억.
같은 숫자가 두 번 나오는데 내 것이 되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계약 담당자 송영후는 내가 펜을 들기를 기다렸다. 그가 벗어 놓은 안경은 내 월급보다 비싸 보였다.
맞은편 남자는 웃지 않았다.
백도하.
서른한 살. 도원가의 손자. 오늘부터 내 남편이 될 사람.
그가 내 손을 보았다.
“문제 있습니까?”
나는 계약서의 세 번째 조항을 짚었다.
“이건 결혼이 아니라 숙박 규칙 같은데요.”
그제야 그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 * *
처음 그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금액이 잘못 전달됐다고 생각했다.
이십만 원도 이천만 원도 아니었다.
이십억.
은행에서 다른 사람의 큰돈은 자주 봤다. 내 이름 옆에 그렇게 큰 숫자가 붙는 일은 대개 나쁜 일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처음 부탁했던 것도 잠깐 이름을 빌려 달라는 말이었다.
그 뒤에는 잠깐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이 왔다.
이제는 전화가 오면 어디냐는 말부터 했다. 나를 걱정해서 묻는 게 아니라 돈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오늘 아침에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송영후가 말했다.
채권자들과는 시간을 벌어 두었다고.
갚은 건 아니라고도 했다.
그 설명만큼은 나는 놓치지 않았다.
* * *
“같은 방도 아니고 같은 침대여야 해요?”
내가 물었다.
송영후가 입을 열려 하자 도하가 먼저 말했다.
“네.”
“왜요?”
“부부니까.”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자기 대답이 우스운지 생각하는 얼굴조차 하지 않았다.
넓은 창 뒤로 잔디가 보였다. 정원에서 사람이 호스로 물을 주고 있었다. 물은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가 바람에 조금 흩어졌다.
저 사람은 일을 마치면 어디로 갈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성관계까지 계약에 포함되는 거예요?”
내가 묻자 송영후의 손이 멈췄다.
도하가 내 눈을 보았다.
“여기 적힌 건 같이 자는 겁니다.”
“제 질문은 그게 아니에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원하지 않는다면 손대지 않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문장을 종이의 빈 곳에 적었다.
그는 말리지 않았다.
* * *
송영후는 사소한 표현을 다듬자고 했다.
나는 사소하면 그대로 두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도하가 웃었다.
짧고 조용한 웃음이었다.
그가 펜을 가져가 내 문장 아래에 자기 이름을 썼다. 서명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다음은요?”
그가 물었다.
나는 삼조의 마지막 숫자를 봤다.
사십억.
“도망친다는 게 뭔데요.”
“연락 없이 사라지는 것.”
“회사 가는 건요.”
“그건 출근이겠죠.”
“친구 만나는 건.”
“약속.”
“그럼 이 조항은 왜 필요해요?”
도하는 대답하기 전에 내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사라지지 말라고.”
나는 그 문장을 종이에 옮기지 않았다.
* * *
날짜는 사월 삼일이었다.
끝나는 날짜는 칠월 삼일.
송영후는 서로의 일정과 집안의 약속이 그날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석 달 뒤에는 더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나는 휴대전화의 달력을 열었다.
칠월 삼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문득 이십억을 갚고 나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그건 어려울 것이다. 돈이 생기는 게 아니라 빚이 없어지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전화가 울릴 때마다 토할 것 같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펜을 들었다.
서은재, 스물여섯.
내 이름을 적을 때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문제는 다 쓰고 난 뒤였다.
펜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 * *
“걱정 마. 나는 아내를 안 죽여.”
도하가 말했다.
도장을 찍던 송영후의 손이 아주 잠깐 늦어졌다.
나는 도하를 봤다.
그가 웃고 있었다.
아까보다 분명하게.
“농담이에요?”
내가 물었다.
“그렇게 들렸습니까?”
“지금 웃으시잖아요.”
그는 손을 뻗어 내가 놓지 못한 펜을 가져갔다.
손가락이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손등이 서늘해졌다.
* * *
그날 해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송영후는 앞으로 연락할 번호를 알려 주었다. 나는 번호를 저장했다.
사진을 찍자는 사람은 없었다.
부케도 없었고 친구들의 축하도 없었다.
도하는 내 옆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아침에 은행에 갔다가 바로 온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휴가를 반나절만 썼다.
가방 속에는 명찰이 있었다.
서은재.
아직 거기에 누구의 아내라는 말은 붙지 않았다.
* * *
집에는 여자가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민정숙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온 작은 여행 가방을 보고 더 오는 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잠깐 나를 봤다.
“방은 위층이에요.”
정숙은 도하에게 묻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나는 뒤를 따랐다.
층계는 발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은행 기숙사 복도에서는 밤마다 누가 들어오는지 신발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이 집에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숙은 방문을 열었다.
가운데 큰 침대가 있었다.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섰다.
* * *
옷장 한쪽은 비어 있었다.
새 옷을 가득 채워 놓을 줄 알았는데 빈 옷걸이만 몇 개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다.
내가 가져온 옷을 직접 걸어야 했다.
정숙은 욕실과 수건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가까워지려 애쓰지는 않았다.
“저녁은 일곱 시에 드시면 돼요.”
그녀가 말했다.
“못 드시는 거 있으세요?”
나는 생각하다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내려가다가 다시 돌아봤다.
“창문은 이쪽 손잡이를 올려야 열려요. 힘으로 당기면 안 열리고.”
내가 창문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나간 뒤 손잡이를 올렸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 * *
휴대전화가 울렸다.
장성훈 부장이었다.
나는 받지 않으려다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아침에도 휴가 결재 때문에 한참 서 있었다. 그가 서류를 놓고 내 얼굴을 보며 결혼식도 없이 무슨 결혼이냐고 묻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어디야?”
그가 물었다.
나는 밖이라고 했다.
“휴가 냈으면 전화는 받아야지.”
나는 받은 전화기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는 내 책상에 놓인 자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침에 설명한 곳을 다시 말했다.
통화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한다니까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남편이 돈이 많다더니 이제 직장이 우스워 보이느냐는 말도 나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간에 도하가 서 있었다.
* * *
“누굽니까?”
그가 물었다.
“상사요.”
“결혼한 걸 압니까?”
“알아요.”
도하는 내가 쥔 전화기를 보았다.
나는 화면을 껐다.
“늘 저렇게 말해요.”
변명처럼 들리는 게 싫어서 덧붙였다.
“제가 잘못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도하의 눈이 내 얼굴로 올라왔다.
그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옷장 아래에 넣었다.
그가 물었다.
“싫어합니까?”
나는 가방 지퍼를 닫았다.
“좋아할 이유는 없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 * *
저녁은 둘이 먹었다.
긴 식탁을 굳이 끝과 끝으로 나눠 앉지는 않았다. 도하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정숙은 음식을 놓고 나갔다.
수프가 뜨거웠다.
나는 급하게 먹다가 혀를 데었다. 도하는 물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천천히 먹어도 됩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조금 화가 났다.
이 집에서 내가 서두르는 건 배가 고파서만이 아니었다.
도하는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먼저 일어났다.
볼일이 있다고 했다.
어디에 가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오늘 만난 남편의 외출을 내가 왜 궁금해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는 현관에서 재킷을 입었다.
내가 위층으로 올라갈 때 차가 나가는 소리가 났다.
* * *
열 시가 넘어서 그가 돌아왔다.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샤워는 했지만 잠옷으로 갈아입지 못했다.
그는 나를 보고 시계를 봤다.
“아직 한 시간 남았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정말 시간을 재요?”
“당신이 재고 있을 것 같아서.”
그가 욕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듣다가 아버지에게 온 문자를 읽었다.
오늘은 전화가 안 온다. 고맙다.
나는 답을 쓰지 않았다.
* * *
열한 시를 몇 분 앞두고 오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동료의 이름을 보자 이상하게 반가웠다.
나는 바로 받았다.
수진은 내가 어디냐고 물었다. 집이라고 답하자 무슨 집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오늘 결혼했다고 했다.
그녀가 말문을 잃었다.
잠시 뒤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처럼 놀리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은재야. 부장님.”
수진이 숨을 들이켰다.
“장 부장님 돌아가셨대.”
나는 침대 옆을 잡았다.
수진은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아직 자세한 건 모른다고, 다른 직원한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보자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네가 뭘 잘못 들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 * *
통화를 끝냈을 때 도하가 욕실에서 나와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제 상사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다시 말했다.
“죽었대요.”
도하는 놀라지 않았다.
그가 다가왔다.
나는 물러설 곳을 찾다가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혔다. 도하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잡지 않았다.
그는 내 옆에 서서 고개를 조금 낮췄다.
젖은 머리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내 귀 가까이에서 그가 말했다.
“네가 싫어한다길래.”